16.02.20    Avyakt Bapdada     Korean Murli     25.11.85     Om Shanti     Madhuban


지각에믿음을가진승리하는보석들을나타내는표시.


오늘 밥다다는 지각에 믿음을 가진 승리하는 보석들의 염주를 보고 있다. 자녀들은 각자 자기가 굳은 믿음을 가졌다고 믿는다. 너희들 중에 이렇게 믿지 않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만일 누구에게든 그의 지각에 믿음이 들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믿음이 없다면 제가 어떻게 브라마 쿠마르나 브라마 쿠마리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라고 할 것이다. 믿음에 관한 질문에 너희들 모두 “그래요, 제겐 믿음이 있습니다”라고 반응할 것이다. 우리들은 여기 앉아 있는 모든 이가 지각에 믿음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믿음을 기르고 있다고 느끼는 자들은 손을 들어라! 너희 모두 지각에 믿음을 담고 있다. 오케이, 그러면 너희들 모두 굳은 믿음을 가졌는데 어째서 승리의 염주에 등수가 생기느냐? 믿음이란 면에서는 모두 다 똑같은 대답을 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등수가 있는 것이냐? 8명, 100명, 16,000명에 들어가는 데서 차이가 생긴다. 이렇게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 8명의 특별한 신인들과 16,000명의 염주에 대한 찬양과 숭배 사이에는 참으로 크나큰 차이가 있다. 너희들은 아버지가 동일한 한 분이라는 것과 너희 모두 그 한 분에게 속한다는 믿음을 가졌다. 그런데도 어째서 차이가 생기는 것이냐? 지각을 가지는 것에 퍼센티지가 있을 수 있느냐? 만일 너희의 믿음에 퍼센티지가 있다면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르겠느냐? 너희는 여덟 보석의 지각에 믿음이 있고, 16,000개 보석의 지각에도 믿음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냐?

지각에 믿음을 가졌음을 나타내는 표시는 승리이다. 이런 이유로 “지각에 믿음을 가진 이들은 승리한다”라는 찬양이 있다. 그래서 믿음이 있다는 것은 너희가 승리한다는 뜻이다. 너희가 어떤 때는 승리하고 다른 때는 승리하지 못하는 것은 가능하지가 않다. 상황이 어떻든 지각에 믿음이 있는 자녀들은 자기 단계의 힘을 바탕으로 항상 상황에 대해서 승리를 경험할 것이다. 승리하는 보석이 된 이들, 즉 승리의 염주의 구슬이 되었으며 이미 목둘레의 화환에 들어간 이들은 마야에게 결코 패배당할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이나 브라민 가족과 연결되거나 관계를 맺은 이들이 누군가에 대해서, 그들이 패배당했다고 믿거나 그렇게 얘기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 패배는 패배가 아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뭔가를 지켜보거나 행하는 자들이 가끔 잘못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겸손하고 건설적이며 항상 “하 지”라고 하는 영혼들은 잘못된 이해로 인해 어떤 때는 패배당한 듯이 보일 수 있어서, 그들이 실제로 승리한 것을 남들은 패배로 볼 것이다. 어쨌거나 그러한 때 남들의 의견이나 분위기 때문에 너희들의 지각 속의 믿음이 변해서, 너희가 의심을 갖기 시작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것이 승리인지 패배인지 난 모르겠어.” 이런 의심을 품지 말고 믿음을 굳게 유지해라. 그러면 오늘 남들이 무엇을 패배라고 부르든, 내일 그들은 너희에게 "와, 와!"라는 꽃을 바칠 것이다.

승리하는 영혼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서, 마음속에 그것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에 대한 혼란을 전혀 느끼지 않을 것이다. 남들의 의견은 별개의 문제이다. 일부 어떤 사람들은 너희가 옳다고 하고, 나머지들은 너희가 틀렸다고 하겠지만, 너희는 마음속에 너희가 승리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아버지에 대한 믿음과 함께 너희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역시 필요하다. 이렇게 되는 것은 지각에 믿음을 가진 영혼, 즉 승리하는 이의 마음, 즉 생각의 힘이 항상 깨끗하기 때문이다. 자신이나 남들에 대해서 어떤 것이 “네”인지 “아니오”인지를 판단하는 일이 아주 쉬워질 것이며, 그것은 진실 되고 분명할 것이다. 그래서 “난 모르겠어...”라는 혼란이 없을 것이다. 지각에 믿음을 가진 승리하는 보석들을 나타내는 표시는, 그들이 진실된 판단을 하기 때문에 마음속에 전혀 혼란이 없고 항상 기쁨을 느낄 것이라는 점이다. 행복의 물결이 일어날 것이다. 설령 상황이 불과 같아도, 그런 영혼에게는 그 불의 시험이 승리의 행복을 안겨줄 텐데, 왜냐하면 그가 시험에서 승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도 어떤 이가 세속적으로 뭔가에 승리하면 그들은 행복해하며 그것을 축하한다. 그들은 웃고 춤추고 박수를 친다. 그것은 행복을 나타내는 표시이다. 지각에 믿음을 가진 이는 어떤 과제에서도 자기가 혼자라는 것을 경험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설령 모든 사람이 한 쪽에 있고 나 혼자만 반대쪽에 있다 해도, 대다수가 반대편에 있고 승리의 보석은 나 혼자 뿐이라 해도, 그는 혼자라고 여기지 않고 아버지가 함께 한다고 여길 것이며, 이런 이유로 아버지 앞에서는 끝없는 군대라도 아무 것도 아니다. 아버지가 있는 곳에서는 온 세상 전체가 아버지와 함께 있다. 하나의 씨앗은 그 안에 나무 전체를 갖고 있다. 지각에 믿음을 가진 승리하는 영혼은 항상 자기가 뭔가 지원을 받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는 뒷받침해 주는 공여자가 자기와 함께 있음을 자연스럽게 경험한다. 그는 문제가 생기면 아버지 앞에 가서 “바바, 당신은 저와 함께 계시지 않습니까? 당신은 제 조력자 아닌가요? 이제 제가 가진 건 당신 하나뿐입니다”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지원을 이기적으로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은 저와 함께 하시지 않나요? 당신은 이렇지 않습니까?”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것이 믿음이냐? 그러고 나서 너희는 아버지에게 그가 너희의 지원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지각에 믿음을 가진 이는 결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다. 그는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혼자 있다는 경험을 조금도 하지 않을 것이다. 지각에 믿음을 가졌고, 그래서 승리하기 때문에 그는 끊임없이 행복해하며 춤출 것이다. 언짢아하거나 슬퍼하는, 또는 일시적이고 한정된 무관심을 가지는 물결에 휩쓸리는 일이 그에게는 결코 없을 것이다. 가끔 마야의 공격이 강력하면 한정된 무관심도 역시 생긴다. 하지만 그것은 유한하고 일시적인 무관심이다. 그것은 영원하고 무한한 무관심이 아니다. 그것은 강압으로 인해 생긴 무관심의 태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때 너희는 “난 이걸 떠나는 게 더 낫겠어, 나는 그것에 관심이 없어”라고 한다. “봉사를 그만둬야겠어, 이걸 떠나자”라고 한다. 무관심이 있지만 그것이 무한하지는 않다. 승리하는 보석은 항상 패배 속에서도 승리를 경험하고, 승리 속에서도 승리를 경험할 것이다. 한정된 무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옆으로 비켜선다는 뜻이다. 그들은 “무관심”이라는 용어를 쓰지만 사실 그것은 단지 비켜서는 것 뿐이다. 이처럼 승리하는 보석은 어떤 과제, 문제, 사람에게서 결코 비켜서지 않고, 모든 행위를 행하면서, 모든 것을 직면하고 협조하면서 무한한 무관심의 태도를 가질 것이며, 그것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지각에 믿음을 가진 승리의 보석은 자기의 승리에 대해서 결코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절대로 남들에게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보셨죠? 제가 옳지 않았나요?” 이런 식으로 불평하거나 그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공허함을 나타내는 표시이다. 속이 빈 사물은 요란한 소리를 낸다. 뭔가가 더 가득해질수록 소리가 적게 난다. 승리의 보석은 남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줄 것이다. 승리하는 보석은 아버지와 똑같이 지원의 공여자 마스터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아래로 밀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쓰러진 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이다. 지각에 믿음을 가진 이는 그게 낭비적인 생각, 말, 행위 중 무엇이든, 일체의 낭비적인 것들을 멀리한다. 낭비로부터 비켜선다는 것은 승리한다는 뜻이다. 때로는 승리가 있고 때로는 패배가 있는 이유는 낭비 때문이다. 낭비가 이미 다 끝났다면 패배도 다 끝났다. 일체의 낭비를 끝낸다는 것은 승리하는 보석임을 나타내는 징표이다. 그러니 이제는 “나는 지각에 믿음을 가진 승리하는 보석의 징표를 경험하고 있는가?”라고 스스로를 점검해라. 너희 모두 지각에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너희는 진실을 말한다. 그렇지만 알고 받아들이는 그 정도만큼이나, 지각에 믿음을 가지는 것과 실제로 그것에 따라 사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너희 모두 신을 찾았다는 것과 이제는 너희가 신에게 속한다는 것을 믿는다. 아는 것은 곧 받아들이는 것이며 둘은 같다. 하지만 너희가 그것에 따라 사는 데서 등수가 매겨진다. 이렇게 너희 모두 알고 받아들이는 것에서는 잘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 다음의 셋째 단계는 알고 받아들이고 그것에 따라 사는 것이다. 모든 행위에서 믿음과 승리를 가졌다는 실제 징표가 보이게 해라. 여기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너희에게 등수가 매겨지는 것이다. 등수가 왜 만들어지는지 이해가 되느냐?

이것을 두고 애착의 정복자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애착의 정복자라는 정의는 매우 심오하다. 그것에 대해서는 바바가 다른 때 말해줄 것이다. 너희가 지각에 믿음을 가지는 것이 애착의 정복자가 되는 사다리의 한 단이다. 앗챠, 오늘 둘째 그룹이 왔다.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주인이고, 그래서 집의 주인들이 집에 왔다. 너희는 이렇게 말하겠지? 너희들은 집에 왔느냐? 아니면 너희는 집을 떠나 여기에 왔느냐? 만일 너희가 그것을 너희의 집이라고 여긴다면 애착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봉사의 장소이다. 모든 이의 집은 마두반이다. 영혼이라는 측면에서 집은 지고의 거주지이고, 브라민이라는 측면에서 너희들의 집은 마두반이다. 너희들의 본부가 마운트 아부라는 말을 너희들이 한다, 그렇다면 너희가 머무는 곳은 무엇이냐? 그것은 지부가 아니냐? 그래서 너희가 이것을 본부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집에서 여기에 온 것이 아니라, 너희들의 집에 온 것이다. 누구든지 사무실은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자기 집에서 쫓겨날 수는 없다. 사무실이야 바뀔 수도 있다. 너희가 이것을 너희의 집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이 너희의 것이라는 느낌이 들 것이다. 오직 너희가 센터를 너희의 집으로 만들어야만 비로소 소속감이 생길 것이다. 너희가 그것을 센터라고 여긴다면 소속감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 너희의 집이며 휴식처가 되어야 그때 비로소 소속감이 느껴진다. 그러니 너희들은 집에서 왔다. “너희들의 가정은 공여자에게로 가는 문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어떤 곳에 대해서 하는 말이냐? 공여자에게로 가는 진정한 문은 너희들의 집인 마두반이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들은 집에 왔다, 즉 공여자의 집에 왔다. 그것을 문이라고 부르든 집이라고 부르든 같다. 집에 옴으로써 너희들은 휴식과 안락을 받는다. 마음의 휴식, 몸의 휴식, 부의 휴식이다. 너희는 돈을 벌려고 어디에도 갈 필요가 없다. 너희는 음식을 준비하는 일까지도 쉴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직접 음식을 준비해야만 먹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이미 다 만들어진 음식을 각자 접시에 받는다. 여기서는 너희가 주인이 된다. 그들은 타쿠르(신인들의 형상, 주인)의 집에서 종을 울린다. 주인을 깨우거나 잠재우기 위해서 그들은 종을 울린다. 사원에서 보그를 올릴 때도 그들은 종을 친다. 너희들의 종도 울리지 않느냐? 오늘날에는 그것이 유행이어서 너희들은 그것말고 대신 녹음기를 튼다. 너희는 녹음된 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 들고, 녹음기 소리에 깨어나므로 너희는 주인들이다, 그렇지 않으냐? 신봉의 길에서의 모든 것은 여기에서 본뜬 것이다. 여기서도 역시 하루에 서너 번 보그가 바쳐진다. 그들은 새벽 4시부터 살아 있는 타쿠르들에게 보그를 바치기 시작한다. 보그는 암릿 벨라에 시작된다. 그 시간에는 신이 살아있는 형태로 너희 자녀들에게 봉사한다. 모든 이가 신을 위해 봉사하지만, 여기서는 신이 직접 너희에게 봉사한다. 그가 누구에게 봉사하느냐? 살아 있는 타쿠르들에게다. 이 믿음은 너희가 항상 행복의 그네를 타게 해준다. 이해하느냐? 모든 지역에서 온 이들 모두가 특별하게 사랑 받는다. 어떤 지역에서든 올 때마다 그들은 그때 각별히 사랑 받는다. 너희는 사랑받는 이들이지만 이제는 오직 아버지에게서만 각별히 사랑받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마야에게 특별히 사랑받는 자들이 되지 말아라. 너희는 마야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는 자들이 되고 나서 온갖 게임들을 많이 한다. 여기에 온 너희 모두 신(바그완)에게 온 복 많은(바갸반) 이들이다. 앗챠.

지각에 믿음을 갖고 있음으로 인해 변함없이 승리하는 보석인 이들에게, 신과 그들 스스로의 행운을 깨달은 인식의 화신인 영혼들에게, 승리와 패배 양쪽 모두에서 끊임없이 승리를 경험하는 이들에게, 지원의 공여자 마스터이며 남들을 지원해 주는, 즉 협조해주는 영혼들에게, 한결같이 아버지와 함께 있음을 경험하는 고귀한 영혼들에게, 밥다다의 사랑과 기억과 나마스테.

그룹들을만나심:
1) 너희 모두 항상 한 분에 대한 사랑에 넋을 잃고 지내는 고귀한 영혼들이냐? 너희는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고귀한 영혼인 너희가 하는 행위는 무엇이든지 항상 고귀하다. 너희의 생이 고귀할 텐데, 너희의 행위가 어떻게 평범할 수 있겠느냐? 너희의 생이 바뀌면 너희의 카르마도 변한다. 너희의 이름, 모습, 나라, 행위 등 모든 것이 변한다. 그래서 너희는 항시 새로운 생을 산다. 너희들은 새로운 생의 새로움이라는 열성과 열의 속에 머문다. 단지 이따금씩만 이렇게 느끼는 자들은 왕국을 가끔씩만 받을 것이다.

도구가 된 영혼들은 도구가 된 것에 대한 결실을 받고, 열매를 먹는 영혼들은 강하다. 이것은 즉각적인 결실, 고귀한 시대의 결실이다. 이 시대의 열매를 먹는 이들은 항상 강력할 것이다. 그렇게 강력한 영혼들은 항시 역경에 대해 쉽게 승리를 거둔다. 상황은 저 아래에 있고 그들은 저 위 높은 데 있을 것이다. 그들은 슈리 크리슈나가 뱀을 정복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그는 뱀의 머리를 발로 밟고 그 위에서 춤췄다. 이처럼 그것은 너희들의 기념물이다. 뱀의 독이 아무리 강해도 너희들은 그것에 승리하고 그 위에서 춤춘다. 이 고귀하고 강력한 의식은 모든 이를 강력하게 만들고 힘이 있는 곳에는 일체의 모든 낭비가 끝난다. 너희들은 전능한 아버지와 함께 있다. 끊임없이 이런 의식의 축복과 함께 계속해서 전진해라.

2) 너희 모두 불멸하는 아버지의 불멸하는 영혼들이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는 불멸해졌지 않으냐? 너희들은 심지어 몸을 떠나도 불멸한다. 어째서 그러하냐? 너희들은 여기에서 복을 만들어 놓고 나서 가기 때문이다. 너희는 빈손으로 떠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죽는 게 아니다. 그것은 충만한 상태로 떠나는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빈손으로 떠난다는 뜻이다. 가득한 상태로 떠나는 것은 의상을 갈아입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너희는 불멸해진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들은 불멸해지라는 축복을 받았다. 너희는 이것에서 죽음에 영향 받지 않는다. 너희들은 떠나야 하고 그 다음엔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런 이유로 너희들은 불멸한다. 불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너희들은 불멸해졌다. 너희는 매일 지극한 사랑으로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지 않으냐? 아버지는 너희에게 불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럼으로써 너희가 불멸해지도록 축복해준다. 항상 이 행복을 유지함으로써 너희는 불멸해지고 번창해진다. 공허하게 비어 있던 너희가 가득 채워졌다. 여러 생 동안 비어버릴 수 없을 정도로 너희는 그렇게 가득해졌다.

3) 너희 모두 기억의 순례를 하며 전진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냐? 이 영적인 순례는 끊임없이 너희에게 행복에 대한 경험을 줄 것이다. 이 순례를 통해서 다른 순례들은 모두 영원히 완료되었다. 영적인 순례를 하며 머문다면, 그럴 경우 너희는 다른 모든 순례를 다 한 것이며 다른 순례는 다닐 필요가 없는데, 왜냐하면 이것은 위대한 순례이기 때문이다. 다른 순례들 모두가 이 위대한 순례에 포함되어 있다. 전에 너희는 순례하느라 배회하며 돌아다녔지만 이 영적인 순례로 이제는 너희의 목적지를 찾았다. 이제 너희의 마음은 목적지를 찾았고, 그래서 몸도 역시 목적지를 찾았다. 단 하나의 순례를 통해서 온갖 유형의 많은 방황이 끝난다. 그러니 너희가 영적인 순례자라는 의식을 항시 지속해라. 이렇게 함으로써 너희는 항상 초월한 상태로 초연하게, 애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것이다. 어느 누구에 대한 애착도 없을 것이다. 순례자는 아무에게도 애착을 가지는 일이 결코 없다. 너희의 단계를 변함없이 이렇게 만들어라.

작별의때에:
이 나라와 외국의 모든 자녀들이 모두 협조적이기 때문에 밥다다는 너희 모두를 보는 것이 기쁘다. 밥다다는 협조하는 자녀들을 마음의 옥좌에 앉아 있는 이들로 항시 기억한다. 지각에 믿음을 가진 자녀인 너희 모두 그의 목둘레의 화환이 되었기 때문에 너희는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는다. 앗챠. 자녀들 모두 봉사가 아주 잘 커나가게 만들고 있다. 앗챠.

축복:
행복이라는 행운을 지닌 채 너희가 하는 참된 봉사에서 불멸하고 알로킥한 행복의 바다에서 파도를 따라 움직이는 영혼이 되어라.

그들이 하는 봉사에 대해 밥다다와 시니어 도구들에게서 축복을 받는 자녀들은 알로킥한, 영혼의식의 내면적 행복을 경험한다. 봉사에서 내면의 행복, 영적 즐거움, 무한한 성취를 경험하면서 그들은 계속 행복의 대양의 파도를 따라 전진한다. 진정한 봉사는 모든 이의 사랑, 모든 이의 불멸하는 존경과 행복의 축복을 통해서 너희가 복 많은 고귀한 행운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한결같이 행복한 이들은 행복이라는 행운을 누린다.

슬로건:
변함없이 명랑하고 끌어당기는 형상이 되기 위해서는 충족감의 보석이 되어라.


공지사항:
오늘은 세 번째 일요일로, 세계 요가의 날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모두 저녁 6시 반부터 7시 반까지 집단적으로 요가를 하며, “영혼인 나에게서 순수성의 광선이 뿜어져 나와 온 세계 전체를 정화하고 있다. 나는 정화자 영혼 마스터이다.”라는 순수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